고등학교 다닐 때 "민족"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이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차가운 이성과 이상을 꿈꿀 수 있는 야망을 가진 뜨거운 감성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강조하셨다. 그 때나 지금이나 100% 공감하는 말이고 언제나 저 말처럼 살고 싶은데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반성해 본다.
그런데 문뜩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와 가슴, 차갑고 뜨거운 것, 이 4개의 카테고리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은 4개인데 그 4개 유형의 인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내 머리 속을 갑자기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쓸데없는 인간분류를 시작했다.
1. 머리도 가슴도 차가운 사람?
- 머리도 가슴도 차가운 사람은 싸이코패쓰다. 가슴이 차가운 그에게 남에 대한 연민의 감정따위는 있을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야망도 없겠지만 만약 원하는 것이 생긴다면 그의 차갑고 냉철한 이성은 그가 원하는 것- 그 것이 설령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라 해도- 을 쉽게 이룰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위험한 사람이다. 아마 선생님들이 가장 경계했던 인간상이 이런 인물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 이런 사람들은 또 염세주의자나 비관론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야망도 꿈도 없고 그의 "냉철한" 이성은 손톱만큼이라도 있을지 모르는 이상마저도 그 싹을 잘라버린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이런 저런 현실적인 제약들을 열거하며 오늘도 세상에 무관심하게 살아갈 것이다. 미래의 가능성을 비관하며 발전에 대한 욕망도 열정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 같이 있으면 그 부정적 에너지에 압도되어 버릴 것 같은 사람이 아닐까...
2. 머리도 가슴도 뜨거운 사람
- 이런 사람들은 아마 무슨 운동의 돌격대장, 행동대장.... 혁명가일 것이다. 시대를 잘 타고 나고 자신을 바칠 올바른 그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영웅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의 장비 같은 사람이 떠오른다. 시대를 잘 만나고 주군을 잘 만나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잘못 만난 케이스로는 촛불시위 때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죽는다며 울부짖던 시위대가 생각난다. 그 쇠고기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니 우리 부모 친구 형제들은 살려야 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나갔을 것이다. 그 뜨거운 가슴과 열정은 칭찬해 줄 만한 일인데 머리도 뜨거웠다는게 좀 안타깝다. 정치적 목적으로 선동한 자들의 도구로 이용당한 것 같아서 불쌍한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니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이용당하기가 참 쉬울 것 같다. 조금만 옆에서 바람을 넣으면 온 몸에 불이 붙는 뜨거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가운 사람
- 이런 사람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가슴이 차가우니까 야망도 없고 연민도 없는 차가운 사람인데다가 머리까지 뜨거워서 별로 세상에 임팩트 없는 사람들일 것 같다.
4.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사람
-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연민의 정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과 이상을 꿈꾸는 뜨거운 야망을 갖추었고 그를 실현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까지 갖춘 사람이니 말이다. 이 세상에 존경받는 지도자들은 보통 이 4번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그런 지도자들은 시간이 지나서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그 불씨가 모여서 하나의 큰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지도자로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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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년째,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일까? 우선 1번이 되기에 내 가슴은 뜨거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늘 꿈을 꾸고 세상을 긍정하고 이상과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번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 편향된 생각으로 머리까지 뜨거워 지는게 아닐까 할때마다 독서로 머리를 식힌다.
3번은 정말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아까 말했듯이 내 가슴은 차갑지는 않다.
그럼 4번은? 4번이 되기에 아직 가슴은 미지근한 편이고 머리는 충분히 차갑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가슴 속에 꾸던 꿈이랄지 그 이상이라는 것이 점점 현실이라는 핑계를 대며 작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의 머리는 아직 차갑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2010년 새해에는 좀 더 4번에 가까워 지려고 노력해야겠다.